안녕하세요, 메디브 뉴스레터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삼일절은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이기도 하지요.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는데요.
한의사들 역시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답니다. 오늘은 삼일절을 맞아 한의사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한의사이자 교육자, 강우규 한의사🤓
강우규 한의사는 1855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으며, 한의사로 활동하며 모은 재산으로 사립학교와 교회 등을 세운 교육자로서 민족계몽운동에도 힘썼습니다.
경술국치 후에는 북간도로 이주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1919년 9월 4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신임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투척합니다.
비록 거사는 실패했지만, 나이 61세 강우규 한의사의 의거는 3.1 운동 이후 국민들에게 큰 자극을 줬고, 미국 언론에도 사건이 보도될 만큼, 해외에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렸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1920년 사형을 앞두고 남긴 유언-
(원문보기1)(원문보기2)
독립군의 군의관은 한의사였다🙂
신홍균 한의사는 1881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경술국치 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1920년, 독립군 '대진단'을 창설하고 인근 독립군 부대와 연합해 무장투쟁을 했습니다.
신홍균 한의사는 군의관으로서 부상병 치료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당시 한의사들은 군의관으로 활동하면서 양비귀의 껍질인 앵속각을 부상자들에 대한 진통제 처방으로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신홍균 한의사도 아편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원문보기)(관련논문)(원문보기2)
한의사,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1903년 함경남도에서 출생한 신광열 한의사는 9살이 되던 때 숙부 신홍균을 따라 만주로 이주했고, 1925년 제일 정몽학교에서 다수의 독립운동가 배출에 힘썼습니다.
1930년에는 3.1운동 11주년을 앞두고 간도에서 대대적으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습니다. 출소 후에는 1942년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치료와 군수품, 독립자금을 조달하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참고로 앞서 소개한 신홍균 한의사와 신광열 한의사는 자생한방병원 설립자인 신준식 박사의 숙조부, 부친입니다.😮
허발 한의사는 의병 활동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동포들의 교육을 돕고 국내 독립운동 단체에 군자금을 지원했고, 조종대 한의사는 한의원을 거점으로 하여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처럼 국내뿐 아니라 러시아, 만주의 한의원들은 주요 항일 투쟁의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군자금을 마련해 독립운동 단체에 기부하는 거점으로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어요.
오늘은 삼일절을 맞아 한의사 독립운동가를 소개했어요.
선배들의 숭고한 뜻과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